서로 다른 오후

 2026.11.07(Sat) - 11.29(Sun)AM 11:00 - PM 6:00 *매주 월요일, 공휴일 휴관입니다. *무료 관람입니다. [ 찾아오시는 곳 ]서울 강남구 양재천로 191 동화빌딩 1F*주변 공영주차장 이용부탁드립니다. 《서로 다른 오후》이효연 × 루시드로잉 2인전 책을 펼쳐 놓고도 한동안 다른 곳을 바라보는 오후가 있다. 창가에 마주 앉아 찻잔이 식는 동안 별다른 말을 나누지 않는 오후도 있다. 누군가는 방 안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는 골목을 걷다가 늘 지나치던 건물 앞에 발을 멈춘다. 《서로 다른 오후》는 이처럼 익숙한 하루에서 각기 다른 장면을 오래 바라보는 두 작가의 전시다. 이효연은 한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 감정이 움직이는 순간을 살피고, 루시드로잉은 집과 골목, 숲에 쌓인 시간을 세밀한 선으로 기록한다. ■ 이효연 이효연의 그림 속 인물들은 저마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춘 듯하다. 소파에 앉은 여인은 책을 펼친 채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창가에 앉은 두 사람은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말을 아낀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이 침묵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시선이 머무는 방향과 몸의 기울기, 인물 사이에 놓인 사물이 그 순간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작가는 감정이 아직 말이 되기 전의 시간을 화면에 남겨 둔다. 관람자는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비슷한 오후를 보낸 적이 있음을 떠올린다. 이효연_프쉬케, 그대의 거울_아사에 유채_162x130.3cm(100호)_2026 (좌)이효연_Two and twos_아사에 유채_91x116.7cm(50호)_2026(우)이효연_Still lives 1_아사에 유채_116.7x91cm(50호)_2026 (좌) 이효연_무지개 1_아사에 유채_90.9x72.7cm(30호)_2025(우) 이효연_무지개 2_아사에 유채_90.9x72.7cm(30호)_2025〈패턴들의 풍경〉에서 두 사람은 닮은 무늬의 옷을 입고 마주 앉아 있지만 시선은 만나지 않는다. 〈프쉬케, 그대의 거울〉에서는 서로에게 기댄 두 몸이 하나의 윤곽처럼 보이면서도 각자의 자리를 지킨다. 작가는 이렇게 두 인물을 나란히 놓는 구도를 되풀이하며, 몸이 가까워지는 방식과 시선이 비껴가는 순간을 조금씩 달리 그린다. 〈Two and twos〉의 노란 방처럼 따뜻한 색으로 가득 찬 공간에도 긴장이 흐르고, 〈두 개의 바다〉에서는 창 너머의 풍경이 벽에 걸린 또 하나의 그림처럼 시선을 붙든다. 방의 색과 빛, 창이 열어 놓은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같은 공간에 앉은 사람도 서로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 루시드로잉 루시드로잉의 시선은 사람들이 살았거나 지금도 살아가는 장소에 머문다. 〈우리 동네〉와 〈근대 건축물〉 연작에서 창과 문, 오래된 벽과 간판은 각기 다른 표정을 지닌다. 누군가 날마다 열고 닫았을 문과 골목을 내다보았을 창을 따라가다 보면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사람들의 하루가 떠오른다. 작가가 건물을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자화상처럼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래 사용한 외관의 작은 흔적에는 한 장소에서 되풀이되어 온 생활이 배어 있다. 루시드로잉_느긋한 오후_Acrylic pen on paper_100x80cm_2026 루시드로잉_초록빛 풍경_Acrylic pen on paper_91x62cm_2026 루시드로잉_나의 작은 정원_Acrylic pen on paper_53x45.5cm_2026 펜과 아크릴 잉크로 쌓아 올린 선은 루시드로잉이 한 장소에 들인 시간을 보여준다. 가까이에서는 벽의 결을 따라가는 짧은 선과 가늘게 갈라지는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오고, 한 걸음 물러서면 그 선들이 모여 집과 골목, 숲의 깊이를 만든다. 건물에 사람들이 살아온 시간이 남아 있듯, 숲에는 나무들이 자라며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준 시간이 담겨 있다. 집을 감싸는 나무의 풍경에서 두 시간은 나란히 이어진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동안 관람자는 작품 속 동네를 걷는 듯하다가도 문득 자신의 기억 속 골목으로 돌아간다. 두 작가에게 반복은 익숙한 것을 다시 보는 방법이다. 이효연이 비슷한 인물 배치와 색을 되풀이하며 관계의 미세한 변화를 살핀다면, 루시드로잉은 같은 움직임으로 선을 쌓으며 평범해 보이던 장소의 고유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효연의 화면에는 같은 오후를 보내면서도 저마다의 생각에 잠긴 사람들이 있다. 루시드로잉의 화면에는 수많은 오후가 지난 뒤에도 그때의 생활을 짐작하게 하는 장소가 있다. 두 작업을 오가며 바라볼 때, 한 사람의 짧은 침묵과 한 건물에 쌓인 오랜 시간이 일상의 서로 다른 결로 다가온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자도 저마다 다른 오후를 떠올릴 것이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끝내 꺼내지 못했던 말, 예전에 살던 집의 창으로 들어오던 빛, 별다른 이유 없이 걸음을 늦추곤 했던 골목. 《서로 다른 오후》는 두 작가가 오래 바라본 장면들 사이에 관람자 각자의 기억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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