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통해 기쁨과 위안을 얻지만 동시에 고통과 갈등을 경험한다. 가까워질수록 서로의 다름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해하려 할수록 오히려 관계가 멀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관계는 결코 안정될 수 없으면서 불협화음 속에서도 지속된다. 김은주 작가는 이러한 관계의 긴장과 균열 속에서 태어나는 예기치 않은 조화에 초점을 맞춘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작가가 만들어낸 캐릭터 ‘나레이스’가 있다. 그녀는 바다의 님프로 태어났지만 동료 님프들과는 다르게 등에 날개를 가지고 있다. 깊은 바닷속을 동경했음에도 남들과는 다른 모습 때문에 쉽게 어울릴 수 없었고, 결국 혼자가 되어 떠돌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외로움을 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레이스는 새로운 존재들과 만나고,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실제로 관계란 불편함과 긴장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과정이다. 나레이스의 여정은 이러한 불편한 조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녀가 처음 속해 있던 세계는 그녀를 배척했고, 그녀는 자신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을 동경하며 고립되지만 곧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구성해 나간다. 우리는 타인이 있기에 자신을 인식하고 때로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규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레이스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결정짓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과 닮은 ‘이상한 존재들’을 만나면서 기존의 규범적 관계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새로운 유대 속에서 자아를 확립해 간다.
“결실이 없어도 맺어야 끝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별 이후 상처들은 새로운 관계들로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
- 작가노트 中 -
전통적인 서사 속에서 마법 소녀는 주어진 운명을 수행하거나 특정한 역할을 부여받고 그것을 완수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하지만 김은주의 세계 속 마법 소녀들은 그러한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을 인식하고 기존의 서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탐색한다. 이는 젠더 수행성 개념과 연결된다. 전통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받아 왔다면, 김은주의 마법 소녀들은 반복된 수행 속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변화시키고 기존의 구조를 교란하며 새롭게 자리 잡는다. 이는 여성 캐릭터들이 보호받거나 희생하는 역할만을 수행하는 대신 관계 속에서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레이스의 이야기는 기존의 사회적 규범 속에서 ‘다름’이 어떻게 배제되고 동시에 그것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될 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작가는 관계의 속성에 대해 두 개인 사이의 효율적인 연결이라기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마주하는 과정이자 서로를 탐색하는 경험임을 강조한다. 나레이스는 님프들과 어울릴 수 없었지만 또 다른 존재들을 만나 새로운 방식의 관계를 형성했듯,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거리 속에서 의미 있는 유대가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타인을 온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관계를 지속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레이스의 이야기는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이 된다.
이번 전시는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과 균열, 그리고 그 안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조화, 즉 Uncomfortable Harmony를 그려낸다. 익숙한 것들과 완전히 동화되지 않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순간들이 있다. 나레이스는 그 여정을 통해 관계의 가능성을 다시 발견하고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확립한다. 김은주 작가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감정의 층위를 세밀하게 포착하여 그것의 조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2025년 3월 15일부터 4월 4일 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